[칼럼]야생동물카페 … 인간의 호기심, 동물의 고통

2017.11.11. 오후 3:23 | 칼럼•자료실

di인간의 즐거움과 호기심 충족을 위해 동물이 이용되고 고통을 받은 역사는 길다. 15세기 이전부터 영국에서는 닭이나 개와 같은 동물을 싸우게 하고 도박을 하는 동물 격투기장이 인기였고, 미국에서는 코끼리를 이용한 서커스가 성행하다가 100년 역사를 끝으로 문을 닫게 된 것이 작년의 일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각종 쇼, 전시, 사냥, 경품제공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을 이용하여 왔고, 인간의 유희를 위한 이러한 산업들은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개발된 도시에서 더 이상 야생동물을 볼 수 없게 되자, 야생동물에 대한 호기심과 체험 유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부터 미어캣, 라쿤, 카피바라, 북극여우 등을 기르고 전시하면서 음료와 음식도 함께 제공하는 ‘야생동물 카페’가 전국 35개소에서 성업 중이다.

최근 녹색당이 전수조사 후 펴낸 서울시내 야생동물카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 있는 10개 업체가 라쿤 44마리, 미어캣 26마리, 북극여우 1마리 등을 기르고 있는데, 이들 동물 다수가 제자리를 반복적으로 돌거나 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

원래 라쿤은 야행성으로 먹이를 물에 씻어 먹고 단체생활 시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특성이 있으며, 미어캣은 종일 쉬지 않고 앞발로 땅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기르고 있는 대부분 카페에서는 영업시간 내내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고, 바닥은 시멘트나 타일 재질로 미끄럽거나 딱딱하다. 먹이를 씻을 물이 있는 공간은 확보되어 있지 않으며, 야생동물에게 꼭 필요한 은신처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채 이용객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본래의 습성이 무시당하고 불특정 다수인이 지나치게 접촉하는 환경에서 길러지면서, 이들 동물들은 크나큰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스트레스가 여러 정형행동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에 대한 위생, 보건적 측면에서도 기존 야생동물 카페들이 위험하다고 한다. 이들 카페는 대부분 이용객이 음식을 먹는 공간과 동물을 접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연히 야생동물의 털, 분비물 등으로 인한 식품위생의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인수공통 병균의 감염 가능성도 높다. 특히 라쿤의 경우 인수공통 질병인 광견병의 주요한 보균체이며, 야생으로 퍼져 나가면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도 있어서 유럽연합(EU)은 생태계 교란 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야생동물 카페는 규제되어야 하지만, 현행법상 별도의 관리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에서는 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고 있고,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감시 대상인 동물원을 ‘총 10종 이상 또는 50개체 이상 동물을 보유 및 전시하는 시설’로 제한하여 영세한 야생동물 카페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물보호법은 야생동물을 보호대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사육환경이나 동물학대에 대한 실효적인 조항이 너무 부족한 상태이다. 식품위생법을 통하여 식품접객영업시설과 동물전시시설을 분리하지 않고 운영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단속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야생동물 카페에 있는 동물들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학대적 사육환경을 제재할 수 있는 동물 관련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야생동물 카페뿐 아니라 동물을 이용한 산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더욱 특이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꾸어 말하면, 더욱 다양한 동물들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면서 학대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해당 동물에 대한 이해가 없는, 혹은 동물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영리만을 목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물 이용 업체들은 동물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가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따라서 동물 복지 차원에서의 규제가 이들 산업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동물들은 식량이나 의복 등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 왔다. 그런데도 인간은 필요 최소한도를 넘어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서까지 동물들을 이용하고 있다. 야생 동물을 가두어 놓고 언제든지 만지며 호기심을 소비하는 것이 동물의 고통을 외면해도 좋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   박주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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