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물권을 아시나요?
매일같이 고기를 먹으면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면서, 또 화장품을 바르고 동물이 나오는 쇼를 보면서 ’인간이 과연 이렇게 동물을 이용할 권리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각자 본성에 따라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고통이나 학대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누군가 동물권리를 말한다면 대부분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오랜 시간 동물을 이용해온 만큼, ‘동물에게는 권리가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한 야생동물의 멸종, 인간을 위해 사육되는 실험동물과 농장동물의 증가 및 비인도적 살상, 반려동물 유기와 학대 등 문제가 끊이지 않으면서, 점차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과 동물의 이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고, 최근에는 동물보호에서 더 나아가 동물복지와 동물권,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동물은 보호만 해주면 되는 것 아닌지, 동물복지라는 건 무엇이며 ‘동물권’이라니? 의문을 가질 법 합니다.
우선 동물보호와 동물복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동물 이용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구분하자면, ‘동물보호’는 동물을 재산과 마찬가지로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며, ‘동물을 잘 보살펴 돌보는’ 정도의 책무를 인간에게 부여합니다.
‘동물복지’는 보호에서 한 발 나아가 동물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고통이 최소화되는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복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물복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특정 동물만을 대상으로 하며, 인간의 이용을 합리화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생명체 자체로서 존중하고 생명 없는 물건과 구별하는 동물권 논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쉽게 비유해서, 동물복지는 동물을 위해 더 안락하고 넓은 우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동물권 주장은 철장을 열고 동물을 자유롭게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교수인 피터 싱어(Peter Singer)인데, 그는 저서인 ‘동물해방’에서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은 인간과 동일하게 보호되어야 할 이익이 있고,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등한 고려(consideration)는 동등한 취급(treatment)과는 다르다고 하며, 결국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무방하다고도 합니다.
모든 동물은 생명체(삶의 주체)로서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는 동물권론은 언뜻 비현실적인 주장 같지만 실제 1970년 중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철학교수였던 톰 리건(Tom Regan)은 “고유한 가치를 지닌 삶의 주체들은 도덕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하면서, 식용, 연구, 실험, 사냥 등의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스티븐 와이즈(Steven M. Wise) 변호사는 유전적으로나 의식수준으로나 인간과 매우 유사한 침팬지와 보노보 등은 아예 법적 인격성(Legal Personhood)을 가질 수 있고, 법정에서 대리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침팬지와 코끼리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물권에 관한 논의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관련 입법과 판례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1978년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동물권리선언’을 통하여, “모든 동물은 동일하게 생존의 권리, 존중될 권리를 가지며, 어떠한 동물도 학대 또는 잔혹행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동물에게도 최소한 위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는 존재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동물의 권리를 ‘법적’으로 명시한 국가는 아직 없지만, 여러 선진국에서는 최소한 법적으로 동물을 생명 없는 물건과는 구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1990년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고 규정하였고, 2002년에는 연방헌법에 “국가는 (중략)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명시, 헌법적 차원에서 동물을 ‘생명체를 가진 동료’로서 존중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1992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법적으로 동물을 사물 아닌 ‘생명’으로 인정하였으며, 2002년에는 독일과 유사한 내용으로 민법도 개정하였습니다.
뉴질랜드는 1999년에 ‘유인원’에게 인간의 권리를 확장하면서 유인원을 실험에 사용할 때에는 정부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였고, 에콰도르는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격상시킨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는 동물에 관련한 언급이 별도로 없고, 민법에서는 동물을 생명 없는 물건(유체물)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으며(제98조),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보호나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마련된 조항들이 많습니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동물권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동물이 생명의 주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생존의 권리, 존중될 권리, 학대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고, 무분별하게 동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인간과 같은 정도의 ‘법적’ 권리는 아니더라도, 피해를 입은 동물은 스스로 그것을 주장할 수 없으므로 최소한 일정 범위 내에서는 법적으로 동물의 권리가 ‘대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입니다.
글 박주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