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물 의료비 문제 해결을 위한 담론

2017.07.11. 오후 6:07 | 칼럼•자료실

이번 칼럼 주제로는 동물 의료비 문제를 짚어볼까 한다. 국내 인구가 기르는 반려동물의 수는 증가했지만 의료비 문제로 인하여 의료방임에 놓이거나 심지어는 버려지는 동물들도 무수히 많은 실정이다. 국내 동물 의료비의 주된 문제점은 의료비가 높다는 점과 동물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점이다.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고가인 원인은 사람과 같은 의료보험 제도가 없어서 동물 보호자의 의료비 부담률이 100%인데다가 진료비에 10%의 부가가치세까지 부과되기 때문이며, 의료비가 제각각인 이유는 기준이 되는 진료비 체계가 없이 온전히 자율적인 책정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의료수가제를 시행하고 있었으나, 진료비 담합을 막고 경쟁을 통해 의료비를 낮추고자 1999년부터 동물병원들의 의료비 지정을 자율에 맡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비가 낮아지지 않고, 동물병원마다 의료비가 8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등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하게 되자, 진료비의 기준을 명확히 하여 표준수가를 정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보면, 독일은 동물진료수가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수의사는 법정 수가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진료비를 받을 수 있으며, 병원마다 진료비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나 크지 않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는 동물진료수가가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진료비, 처방, 심장사상충 검사, 백신 등 기본적인 항목들에 대한 평균 진료비 정보를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더군다나 영국 수의사들은 EU 규정(EU Directive 2006/123/EC)에 따라 진료비 또는 진료비 책정기준을 (요청이 있을 시) 소비자에게 제공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특히 신규 고객에게는 진료비 부과 체계, 진료 기록에 대한 접근 등이 기재된 해당 동물병원 이용약관을 제공하여야 한다.

결국 구체적인 의료비 책정은 수의사의 자율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보호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표준 의료비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함은 여러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인식, 법제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신뢰할 수 있는 조사를 통한 표준 의료비의 정보조차 아직 마련되고 있지 않으므로, 우선 의료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추산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즉, 정부가 동물에게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 의료비 책정 기준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면밀히 한 후 표준이 되는 의료비의 적정 수가를 산출하여 이를 공개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다만, 물가상승률과 병원별 편차 등을 고려하여 적정한 범위를 지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병원이 의료비를 지정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처럼 동물 의료비의 기준이나 적정수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놓음으로써 반려동물 보호자를 포함, 모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병원의 자율성을 도모할 수 있다.

한편, 인의 의료보험 제도와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의 보호자들도 의료보험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의료비의 본인 부담률이 줄어들고, 진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의료비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영국, 미국 등 국가들의 경우 반려동물 의료보험이 활성화되어 있어 동물 의료비 부담을 상당히 덜어주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보호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동물 의료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반려동물 보험이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➀보험료 부담 등의 이유로 보험 가입률이 낮은 점, ➁동물 의료비의 기준을 책정하기가 어려워 손해율 추정이 어렵다는 점, ➂동물등록제 시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보험 대상 동물 외 다른 동물을 이용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험금을 수령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점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보험이 활성화되려면 보험 가입을 통해서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확실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동물 의료보험의 경우 보험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보장 항목도 적어서 보험을 가입하여야 할 유인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보장 항목을 넓혀 동물들이 자주 걸리는 질병 등을 모두 포함하는 등 보호자들로 하여금 보험 가입의 동기를 부여해야 동물 의료보험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표준의료비수가를 마련할 경우 손해율 추정 문제점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보험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동물등록제를 더욱 강력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부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지급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물을 유기하거나 상해를 입힐 여지가 있으므로, 이러한 학대의 문제점도 충분히 고려하여 그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목할 것은, 지난 대선 시 심상정 후보가 공약으로 발표한 ‘참여형 동물의료보험’의 도입이다. 위 보험은 반려동물 보호자들 중 자발적으로 의료보험 제도에 참여코자 하는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고 해당 재원을 통하여 의료비를 일정 부분 감면받도록 하는 제도로 이해된다. 보호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에 기해 이루어진다는 점과 가입자가 많을 경우 보험재정이 확보되어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동물의료 공보험’의 도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매월 혹은 매년 일정 금액을 납부하고 해당 금원으로 동물의료보험공단을 운영하면서 보호자가 동물병원 이용 시 보호자와 공단이 각자 부담분을 병원에 지급하는 것으로, 인의 의료보험 제도와 비슷한 형태이다. 보험재정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입이 강제된다는 점에서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과 유실·유기되어 보호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동물들을 위한 진료 및 진료비 지원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국가나 지자체 예산 또는 사회적 기금을 통하여 동물보건소를 설치하고 진료지원을 하는 방법이 제안된다. 동물보건소에서 유기동물, 영세민을 지원함에 나아가, 동물을 기르면서 모두가 필요할 수 있는 영양 정보 등 여러 교육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동물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까지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에는 동물 진료나 진료비 지원을 제공하는 기관들이 존재한다.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라는 대형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병원들과 연계하여 저비용으로 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는 지역의 보호자들에게는 금전적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또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일정 조건 하에 자금이나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PDSA(수의 자선단체), Blue Cross 등 비영리단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도 이러한 진료(비) 지원 체계의 연구, 도입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백신 보급의 원활화, 지식과 의료기술의 발전 등으로 반려동물의 수명이 증가하게 되고, 수의사들은 높아지는 보호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보다 전문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므로 향후 의료비는 점차 증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비 부담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동물들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려면 위와 같이 보호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제도적인 개선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