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판에 나선 호랑이, 전래동화에서만 가능한 걸까?
<토끼의 재판>이라는 전래동화, 다들 아시나요? 동화 속에서 호랑이는 원고, 나그네는 피고가 되어 호랑이가 자신을 구해준 나그네를 잡아먹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재판을 받죠. 1심 재판의 판사인 소에게 물었으나 소는 온종일 일만 시키다가 죽여서는 고기로 먹는 사람들이 미워 호랑이가 잡아먹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심 재판의 판사인 여우도 사람이 미워 호랑이가 잡아먹어도 된다는 판결을 내리죠. 그러나 3심 재판에 이르러 토끼가 현장검증을 제안하였습니다. 호랑이가 구덩이에 빠진 상황을 재현하자 나그네는 호랑이를 다시 구해주지 않았으며, 토끼는 호랑이에게 은혜도 모르는 호랑이는 죽어야 한다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처럼 동물이 재판의 당사자가 된 상황. 전래동화 속에만 있는 이야기 같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시도하고, 노력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도롱뇽’은 2003년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천성산을 관통하는 원효터널 공사에 대한 공사 중지 가처분 사건의 채권자였습니다. 1990년대 정부가 천성산 일대에 경부고속철도 건설 노선을 발표하면서 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벌어진 일입니다. 환경 단체들은 도롱뇽을 원고로, 자신들이 원고의 대리인으로 나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죠. 하지만 법원은 도롱뇽이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황금박쥐’ 또한 소송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동물입니다. 2007년 황금박쥐를 비롯한 7종의 박쥐 서식지가 가금-칠금 간 도로 확·포장 구역으로 결정되자, 충주환경운동연합과 환경법률센터는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황금박쥐를 원고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청주지법은 동물을 소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죠.
그 이후 소송의 주체로 등장한 동물은 ‘산양’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문화재 현상 변경을 허가해준 것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산양’을 소송의 당사자로 내세운 것이죠. 이 행정소송(서울행정법원 2018구합 2230호)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어서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과거 사안들을 볼 때 산양의 소송 주체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현행법상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송법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원고와 피고가 되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당사자능력’이라고 하는데, 우리 현행법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에서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동물이 당사자인 부분의 청구를 각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각하란, 청구의 요건을 갖추지 않아 청구의 당부를 따지기 전에 심리를 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동물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이며, 동물의 소송행위는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는 이유에서죠.
하지만 동물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한다면, 고통을 피하고 학대를 당하지 않고자 하는 의사를 동물들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걸까요? 생존은 복잡한 의사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본성의 일부입니다. 동물의 서식처에서 진행되는 터널 공사, 케이블카 설치가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인식된다면, 이를 피하고자 하는 동물의 의사는 당연히 추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소송행위는 도롱뇽, 황금박쥐, 산양과 같이 추정된 의사를 바탕으로 대리인이나 후견인을 통한 소송 수행도 가능합니다.
결국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방법론적 문제가 아닌 ‘인식론’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스위스는 헌법에 동물 보호 관련 조항을 두고 있고, 미국은 하와이 빠리야(palilla)의 소송상 당사자능력을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동물권, 동물의 소송상 당사자능력 인정 문제 등의 관련 문제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만 현재 개헌 논의와 더불어 동물권을 헌법에 규정하자는 시민단체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는 만큼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합니다.
글: 안나현 이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