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우리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개해야 하는가
‘왜 나는 조그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서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대신
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작으냐 작으냐, 라고
그대의 들 / 강은교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인 강은교 시인은 「그대의 들」이라는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던 걸까.
법학을 접하기 전 시인의 말은 단순한 시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법학을 배울수록 「그대의 들」은 하나의 구호(口號)로 다가왔다. 현행법이 만들어지기까지 현실에 분개하며 목놓아 외쳤던 의견들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최초로 제정된 이후 1987년 10월 29일 개헌이 될 때까지 총 9번의 개헌이 있엇다. 민주화 이후 헌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에 국민 의견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들이 정립됐고, 하위법들을통해 구체화되면서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제9차 헌법이 개정되고 약 30년이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30년 전 구현하려고 하였던 가치와 이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권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동물권’은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동물이 인간의 소유물이나 객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현행 헌법에서 동물에 관련된 조항은 전혀 없고,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에 해당되며,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을 소유할 수 있는 객체로 전제한 후 동물보호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98조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동물보호법 제2조(정의)
- “소유자등”이란 동물의 소유자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법률로 지키고자 했던 이념과 가치들도 변화했고,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2018년 3월 22일 정부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물권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개헌안에는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기게 됐다.
동물보호에 관한 가치와 이념을 헌법적 차원에서 담아냈다는 점으로만 보면 이는 분명 진일보한 부분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을 객체로 보는 동물 보호의 시각을 넘어서 동물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동물권 보장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강은교 시인의 시에서 ‘하찮은 것들이 위대하다’ 말한 것은 그들이 모여 새로운 힘을 만들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죽이고, 기본적인 생육 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은 채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과 돼지들은 전염병에 노출되고 있다. 전염병에 걸렸다고 믿을만한 역학 조사가 있다면 큰 고민 없이 살아 있는 생명을 처분하는 명령이 내려지는 현실이다. 동물을 물건 또는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만 생각한다면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하게 여기던 것에 대해 분노하는 개개인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모은 목소리는 동물권 보장에 대한 가치를 형성했다.
그동안 현실에 분개한 많은 목소리가 사회, 그리고 법률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동물권 보장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가 헌법 개정을 위한 변곡점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로 제10차 개정 헌법에는 ‘동물권 보장’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글: 안나현 이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