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명으로서 동물의 권리

2017.07.12. 오전 12:33 | 칼럼•자료실

19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보고된 조류인플루엔자는 우리나라에서 2003년 최초 발생하여 해마다 수 만 마리의 가금류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3,500만 마리라는 가공할 만한 수의 조류를 살처분했던 2016년을 포함하여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AI와 구제역으로 무려 7,896만 마리의 조류와 390만 마리의 소, 돼지를 살처분하였다. 올해도-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여지없이 AI뉴스는 여기저기서 보도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제기되었던 공장식 축산에 대한 위헌 소송은 “축산법 등의 내용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행 축산 관련 법령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축산법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으니, 닭을 A4용지보다도 작다는 배터리케이지에서 날개한번 펴보지 못한 채 알을 낳는 기계로 살아가게 하고, 돼지를 어두컴컴한 축사의 빽빽하게 들어찬 스톨 안에서 평생 몸을 한번 돌리지도 못하게 하는 공장형 밀집식 사육이 불러온 필연적인 재앙은 법률을 탓할 수 없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되어 9차례의 개정을 거치는 동안 갈등과 대립, 혼란을 거듭하여 민주항쟁의 결과물로서 현행헌법에 이르렀으나,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및 통치구조에 관한 조문들은 인간가치중심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최다 살처분 국가, 대규모 개농장이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은 어쩌면 우리 헌법이 환경을 오직 인간의 권리와 인간이 누릴 자원으로서의 환경,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대상에 불과한 환경으로 정의하여 그 안에 함께 살아가는 지각력 있는 동물조차 생명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이용과 착취를 정당화함에 따른 필연적 결과일지 모른다.

지금의 세계는 헌법이나 동물보호법에 국가의 동물보호의무나 동물권을 명시하고 있다. 즉, 동물을 단순히 인간의 이용에 제공되는 대상, 수단이 아니라, 지각력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동물을 이용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열악한 환경, 유전자 조작, 동물실험 등이 불러오는 각종 해악이 다시 인간에게 돌아와 기존의 지배와 착취 구조로는 인간조차 더 이상 지구에서 존속하기 어려움을 깨닫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동물권의 정의 여부, 보호 형태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독일의 경우는 헌법차원에서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즉, 독일 기본법(Basic law, 20a)에는 “국가는 또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헌법 범위 내에서 입법에 의하고 법률과 법의 기준에 따라 집행권과 사법권에 의하여 자연적 생활 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6년 독일에서 ‘수간 행위를 금지한 독일 동물보호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독일 헌법재판소는 ‘부자연스러운 성적인 공격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원고들이 거론한 성행위의 자기결정 권한에 우선’한다며 위헌 심판 청구를 기각하였다. 동물권 혹은 국가가 동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올바르게 대하여야 할 의무)와 국민이 안전한 고기를 먹을 권리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는지를 형량 할 여지조차 없었던 우리의 상황과 극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동물에게 가혹한 사육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해야할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느낀다. 인간과 동물은 상호 의존적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용, 관리,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생태계 내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관계이기에 동물이 ‘생명’의 주체로서 본성에 따라 살아갈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동물만을 위한 배려는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2017. 6. 16. 한국환경법학회 제130회 학술대회-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한국사회와 헌법-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