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물이 아닌 생명으로, ‘동물들의 제헌절’ 하루 빨리 오길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 제38조 제3항에는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가 헌법에 마련되는, 대한민국 동물들의 제헌절이 수립될 뻔(!)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동물보호 단체들은 ‘동물권’이 개헌안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천명한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개헌안을 지지했습니다. 그 후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가 담긴 대통령 개헌안은 야당의 의결 불참으로 인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동물보호 의무, 나아가 ‘동물권’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진일보하였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이런 궁금증을 가져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현재 동물보호법이 존재하는데, 헌법에 국가의 동물 보호 의무를 넣어야 하는걸까?, 현행 동물보호법으로는 동물권을 지킬 수 없는 것일까?’ 오늘은 이 궁금증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물권의 개념, 그리고 시작”
위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동물권의 개념부터 알아야겟죠. 동물권이란, 모든 동물에게 생명체(삶의 주체)로서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동물들도 고유한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권리의 주체이며, 그들에게 이러한 권리 주체성이 인정되는 한 그들의 권리 또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동물권 논의’는 1970년 중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의 동물권 변호사로 유명한 스티븐 와이즈(Steven M. Wise) 변호사는 유전적으로나 의식 수준으로나 인간과 매우 유사한 침팬지와 보노보 등은 아예 법적 인격성(Legal Personhood)을 가질 수 있고, 법정에서 대리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침팬지와 코끼리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78년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동물권리선언’을 통해 “모든 동물은 동일하게 생존의 권리, 존중될 권리를 가지며, 어떠한 동물도 학대 또는 잔혹행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동물의 권리를 ‘법적’으로 명시한 나라는 없지만, 헌법에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넣어둔 국가들은 있습니다. 독일은 1990년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고 규정하였고, 2002년에는 연방헌법에 “국가는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명시, 헌법적 차원에서 동물을 ‘생명체를 가진 존재’로서 존중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1992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법적으로 동물을 사물(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하였으며, 2002년에는 독일과 유사한 내용으로 민법도 개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동물권 논의, 얼마나 진행됐을까?”
우리나라 헌법에는 동물에 관련한 언급이 별도로 없고, 민법에서는 동물을 생명 없는 물건(유체물)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제98조).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생명체로서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 보호나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마련된 조항들이 많습니다.
또한 2006년 ‘도롱뇽 판례’로 유명한 공사착공금지가처분 사건에서 대법원은 동물을 자연 그 자체이지 생명으로서 권리 주체성은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도롱뇽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도롱뇽목 도롱뇽과에 속하는 양서류로서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한 것이죠.
위 대법원 판결의 원심판결(부산고등법원 2004. 11. 29., 자, 2004라41 결정) 판단이유 중 발췌
가. 신청인 도롱뇽의 당사자능력에 대한 판단
그러므로 먼저, 신청인 도롱뇽에게 당사자능력이 있는 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신청인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신청인 ‘도롱뇽’은 천성산에 서식하는 도롱뇽 또는 위 도롱뇽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 이 사건 터널 공사로 인한 도롱뇽의 생존환경 및 천성산의 자연환경 파괴를 막기 위하여 “자연 내지 자연물의 고유의 가치의 대변자”인 환경단체인 신청인 단체를 그 사법적 활동의 담당자로 삼아 이 사건 신청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피건대, 당사자능력이란 일반적으로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는 소송법상의 능력(자격)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이름으로 재판을 청구하거나 또는 소송상의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이러한 당사자능력은 소송법상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념이며 소송사건의 성질이나 내용과는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정해지는 능력으로서 어떠한 실체에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민사소송법 입장에서 독자적으로 결정된다.
민사소송법 제51조는 당사자능력(當事者能力)에 관하여 민사소송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과 그 밖의 법률에 따르도록 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52조는 대표자나 관리인이 있는 경우 법인 아닌 사단이나 재단에 대하여도 소송상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에 대하여 당사자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현행법률이 없고, 이를 인정하는 관습법도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신청인 도롱뇽이 당사자능력이 있다는 신청인 단체의 주장은 이유 없다. 따라서 신청인 ‘도롱뇽’의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은 부적법하다.
그 후 한동안 동물의 권리주체성과 관련된 논의는 답보 상태였고, 2018년 3월,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 단체인 PNR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공사 허가를 취소하라’는 내용과 관련하여, 설악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1급 동물인 산양을 원고 당사자로, 또 산양들의 후견인인 자연인을 내세운 뒤 산양과 후견인을 각 대리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재판에서 법원은 동물권에 관한 의미있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2006년 대법원 판결과 문구 하나 다르지 않게, 산양은 자연 그 자체이므로 권리 주체성이 없다고 판단할까요?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국가의 동물보호 책무 조항이 삽입되는 개헌논의가 진행 중이었다면, 판결의 결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참고로 아직 변론기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위 사건의 원고들에게 사건이 패소할 경우 상대방(문화재청장)에게 지급할 소송비용 약 900만 원을 미리 담보로 제공하라는 담보제공명령을 했습니다. 판결 결과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법원의 동물의 권리에 관한 논의와 의미 있는 언급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가 다르게 동물권, 동물보호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장 동물에게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의 동물권이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헌법에서 동물보호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마련하고 개별법령에서 특정한 경우에 사람이 동물을 대리하거나 후견할 수 있는 제도나 방안을 마련한다면 어떨까요? 적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물들이 생존할 권리, 존중될 권리, 부당하게 학대나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활발한 동물권 논의를 통해 동물들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동물들의 제헌절’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글: 이혜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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